KBS 역사스페셜– 독도강치의 증언, 1905년 일제 독도침탈 비사 / KBS 20111027 방송 – 알아야 힘이다



KBS 역사스페셜– 독도강치의 증언, 1905년 일제 독도침탈 비사 / KBS 20111027 방송

– 독도 강치, 누가 어떻게 멸종시켰나? 수만 마리의 강치가 서식하던 독도,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강치는 완전히 멸종됐다. 이제 강치는 사진, 박제품 그리고 기록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수 만 마리의 강치는 왜 자취를 감춘 것일까? 강치 멸종의 가장 큰 사유는 일본어부들의 남획이다. 그 중심에 어부이자 사업가였던 ‘나카이 요자부로’가 있다. – 바다의 살육자, ‘나카이 요자부로’ 일본의 ‘이즈미 마사히코’라는 작가는 자신의 책 「영해 없는 섬, 독도」에서 ‘나카이 요자부로’를 바다의 살육자라고 칭하며 맹비난하고 있다. 일본 오키섬의 자연관에서는 독도 강치의 각종 부위를 이용해 만든 공예품들이 전시돼있다. 당시 고급품이었던 이 가방은 파리 박람회에 출품해 수상을 받을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다. 독도 강치의 쓰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피하지방은 기름으로 살과 뼈는 비료로 이용했고 새끼는 생포해 서커스용으로 팔아 넘겼다. 당시 ‘독도 강치’는 최고의 수입원이었고 그에 따라 강치잡이도 성행했다. 당시 독도 강치잡이 중심에 있던 ‘나카이 요자부로’가 오키도청에 제출한 강치잡이 신고서에 따르면 1905년에만 2,750두, 1906년 1,385두, 1907년 2,094두, 1909년 1,660두로 해마다 1,000마리 이상의 강치가 남획되었다. – ‘나카이 요자부로’ 독도 어업 독점을 꾀하다 1904년 일본 정부에 제출된 나카이 요자부로의 청원은 독도에서 어업을 독점할 수 있게 섬을 임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청원서에는 독도를 아예 일본의 영토로 편입해 달라는 요구항목이 하나 더 있었다. 일본 관리들이 나카이 요자부로를 이용해 명분을 만들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려 했던 것이다. – 1905년 이전 독도는 무주지였나? 일본 측은 독도가 무주지였으며 1903년 이후 ‘나카이 요자부로’가 독도에서 강치잡이를 한 것이 독도를 실효 지배한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독도를 편입시킨다. 그러면서 한국은 그 전에 독도에서 어로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62년 발간된 민국일보의 거문도 주민 ‘김윤삼’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일본 측의 독도가 무주지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제41호를 통해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대한제국은 칙령 제41호로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승격시키고 울도군수의 관할 역으로 석도(현재의 독도)를 명시했다. 그렇다면 그동안 잘 알려져 있던 명칭 ‘우산도’ 대신 ‘석도’로 표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 독도 강탈의 증거, 강치 1905년 일본의 어부 ‘나카이 요자부로’의 청원을 빌미로 이루어진 부도덕하고 은밀한 일본의 독도편입. 일본인의 총칼에 살육당했던 강치는 비록 사라졌지만 그 수난의 역사는 고스란히 남아 일본의 독도편입이 명백한 ‘강탈’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신역사스페셜 85회– 독도강치의 증언, 1905년 일제 독도침탈 비사 (2011.10.27.방송) http://history.kbs.co.kr/

우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은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역사 공부는 재미삼아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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