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역사스페셜 – 월남파병, 박정희의 승부수였다 / KBS 2003.5.24 방송 – 알아야 힘이다



KBS 역사스페셜 – 월남파병, 박정희의 승부수였다 / KBS 2003.5.24 방송

– 한국정부는 베트남에 의용군을 보내려 했다 1965년 1월 미국이 의무대에 이은 2차 파병을 요청 뒤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된 극비문서의 말미에는 “파병은 불가피하나 의용군의 형식을 취하고, 충분한 대가를 받을 것“ 이란 메모가 적혀있다. 월남전으로 국내 안보에 불안을 느낀 한국정부는 월남파평을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당시 국제사회는 미국의 월남전쟁에 대해 비판적 반응을 보이고 있었고, UN가입을 준비하고 있던 한국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반응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처지였다. 현실상 불가피한 파병과 명분 사이에서의 갈등! 전쟁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 지려했던 한국정부는 베트남에 의용군을 보내려 했다. – “충분한 대가를 받아라” 그런데 막상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것은 정규군 파병안이었다. 1965년 1월 28일 비전투부대 정규군 파병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같은 해 5월17일 박정희 대통령은 美 존슨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방미길에 오르게 된다. 이 초대는 전투부대 파병요청에 목적이 있었다. 이에 박대통령은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 파월기간 동안 미군의 군원이관중지, 차관제공, 베트남 군수물자를 위한 구매국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등의 조건을 만족시키고 전투부대를 파병하게 된다. – 월남특수, 한국경제 그리고 박정희 파월장병들은 월급을 한국으로 송금해 국내 외화보유고를 늘리는데 큰 역할을 한다. 또 월남 내의 한국 군대 시설 뿐 아니라 하역, 건설 등 분야까지 진출하여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들여온 차관은 고속도로 등 경제인프라를 확충시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당시 심각했던 실업률도 감소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성장은 박대통령 장기집권의 기반이 된다. – 1961년부터 월남파병을 제안한 박정희 최초의 월남파병 논의는 1961년 11월 박정희가 국가재건회의 최고의장이던 시절 이루어졌다.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파병을 먼저 제의한 것은 의외로 박정희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쿠데타 직후였던 당시 박정희는 백악관에게 의혹의 대상이었고 케네디대통령은 파병제의를 거절한다. 그러나 1962년 5월 12일 박정희는 비밀리에 월남으로 군사시찰단을 파견하고 월남국민의 감정까지 염두에 두고 구체적 파병방안까지 마련하고 있었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한국경제와 쿠데타에 의한 정통성이 약한 정권, 박대통령은 월남파병을 한국과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돌파구라고 여겼던 것이다. 역사스페셜 210회 – 월남파병, 박정희의 승부수였다 (2003.5.24. 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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