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HD역사스페셜 – 백 년 만의 귀환, 북관대첩비 / KBS 20051021 방송 – 알아야 힘이다



KBS HD역사스페셜 – 백 년 만의 귀환, 북관대첩비 / KBS 20051021 방송

– 북관대첩은 어떤 전투였나? 북관대첩은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정문부 장군이 3천 명의 의병을 이끌고 함경북도 길주에서 가토 기요마사의 왜군 2만 2천 명을 격파한 전투이다. 함경도를 점령한 가토 기요마사는 조세첩을 만들어 농민에게 세금을 거두는 등 함경도 지역지배권을 강화한다. 의병장 정문부는 이 최강군단과 맞서 6연승을 거두며 왜군을 함경도 밖으로 몰아낸다. 승리를 이끈 정문부의 전술과 지략을 살펴보고 임란 당시 의병들의 활동을 재조명한다. – 북관대첩비는 왜 야스쿠니 신사에 있었나?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북평사였던 정문부 장군이 의병을 규합, 왜군을 격퇴한 전공(북관대첩)을 기념하여 숙종 34년(1707)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에 건립한 전공비이다. 임란 때 조선 육군의 대승전을 담은 기록이 적혀있는 비가 바로 북관대첩비인 것이다. 이 비가 왜, 어떻게 일본으로 가게 됐을까? 북관대첩비가 세워지고 약 200년 후인 1905년, 러-일 전쟁의 와중에 일본군 미요시 중장이 이 비를 강탈해가는 비극이 일어난다.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로 넘겨지는데… 왜 하필 일본전몰자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패전의 기록인 북관대첩비가 보관됐을까? – 잊혀진 영웅 정문부, 그는 누구인가? 정문부는 임진왜란 때 혁혁한 공로를 세운 영웅이었지만 비극의 영웅이기도 했다. 정문부는 명종 20년(1565)에 한양에서 출생. 시문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 문관으로서 능력을 인정받던 중 27세에 함경도 북평사를 자진하여 함경도와 인연을 맺는다. 임란이 발발하자 정문부는 함경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두 왕자를 왜군에게 팔아넘긴 국경인 등의 반란군을 처단하고 기록적인 연전연승을 달성해 북관대첩의 영웅이 된다. 그러나 그를 시기한 관찰사 윤탁연의 축소보고로 살아생전 그의 공적을 인정받지 못한 채 60세에 역모사건에 휘말려 혹독한 고문에도 무죄를 주장하다 결국 사망한다. 그 후 정문부의 명예가 회복되고 그의 공적이 기록한 북관대첩비가 세워지기까지 100년이 걸렸다. 북관대첩비만큼이나 비운의 삶을 살았던 잊혀진 영웅 정문부의 생애를 재조명한다. – 북관대첩비를 되찾기위한 반환운동, 결실을 맺다. 1909년 일본 유학생이던 조소앙 선생은 야스쿠니 신사에서 이 비를 보고 ‘북관대첩비 사건의 소감‘이라는 글을 투고했다고 한다. 1978년, 일본군 미요시 중장이 강탈해 간 북관대첩비를 한국사 연구자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이 발견하자 국내에선 본격적인 반환운동이 시작된다. 정문부 장군의 후손인 해주 정씨 문중이 반환을 요청하고 박정희 정부까지 나섰으나 비의 반환은 성사되지 않았다. 1990년부터 북관대첩비 반환을 위해 노력했던 일본의 센신스님, 중국상하이에서 북한 불교대표인 심상진을 만나 남북합의를 이끌어낸 한국의 초산스님. 북관대첩비의 100년 만의 귀환을 성사시킨 남-북-일본의 협력 과정을 밀착취재한다. HD역사스페셜 24회 – 백 년 만의 귀환, 북관대첩비 (2005.10.21.방송) http://hi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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